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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및 사회

한국 국기 '태극기' 를 만든 사람이 중국 외교관 '마건충(馬建忠)' 이라고? 그래서 알아본 최초 태극기 제안된 역사

 

 

 

중국의 한 예능 퀴즈 프로그램에서 '한국 국기를 디자인 한 중국의 유명한 외교관은 누구인가?(韩国国旗的设计者竟然是我国的著名外交家?)' 라는 마지막 질문에 '마건충(馬建忠, Ma Jianzhong 마젠중) 이라고 답을 했고 정답을 맞춰 최종 우승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지난 9월 방송된 이 프로그램이 나간 직후 중국 현지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지 언론은 "한국 국기는 사실 중국이 만든 것이다" 는 등의 제목으로 보도가 되기도 했고, 현지 네티즌들은 "한국은 자기들이 만든게 뭐냐" , "중국 싫다면서 왜 안 바꾸냐" 는 등의 댓글을 달기도 했는데요.

중국 사이트 '바이두' 에서도 검색해보면 이와 관련한 질문 및 답변과 네티즌들의 반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태극기가 만들어졌다는 내용은 초기에 박영효의 태극기로 최초로 알려져 있다가 이후 1882년 5월 22일 김홍집에게 명을 받은 이응준이 만들었다는 설이 현재는 유력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나라는 청 황실의 깃발로 사용하던 황룡기를 이용해서 속국의 모습을 보이라고 제안하였습니다. 이때 마젠중이 "황색을 백색으로 바꾸고, 청색 용은 붉은 용으로, 조선의 용은 격식을 낮게 표현하여 발톱이 하나 적게 하라" 는 등의 제안을 했지만 고종은 못 받아들이겠다며 거부하였고 이로 인해 김홍집과 청나라 마젠충이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청나라 삼각황룡기와  청나라 국기

 

 

이와중에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를 지정해 달라는 미국 공사 로버트 슈펠트의 요청으로 이응준에게 국기를 그리게 하였고, 2004년 미국 해군부 해상국 자료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권대사 슈펠트 제독은 "조선이 청나라 국기인 '황룡기'와 비슷한 국기를 게양한다면 조선을 주권독립국으로 간주할 수 없다" 고 말했습니다. 이에 이응준은 5월 14~22일 사이에 미국 함정인 스와타라 호 안에서 국기를 만들었고 이응준의 태극기가 5월 22일 조인식에 성조기와 함께 나란히 걸린것입니다.

 

 

이응준 태극기

 

 

박영효는 이후 3개월 뒤 청나라가 '조선은 청의 속국' 이라며 조선 측에 청나라의 '황룡기'와 비슷한 '청운홍룡기'를 게양할 것을 요구하자 메이지마루 호의 선장인 영국인 제임스에게 자문을 구해 '이응준 태극기'를 토대로 사괘의 좌우를 바꾸어 사용합니다.

 

박영효 태극기

 

 

태극기가 조선국기로 공식 반포된 때는 이듬해인 고종 20년 음력 1월 27일이고, 대한민국 국기로 제정된 것은 1949년 10월 15일 (대한민국 문교부 고시 제2호)입니다.

 

 

조선국왕의 어기

 

 

청나라 마젠창은 중국인 고문으로 태극 팔쾌도를 건의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사실 조선국왕의 어기를 그대로 쓰라고 한 말과 다름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1883년 3월 6일 조선 정부는 태극기를 국기로 정식 반포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는 1884년 미국 공사 수행원이던 주이가 입수한 '주이 태극기' 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는 '데니 태극기' 로, 고종이 1890년 미국 외교관 오언 데니에게 하사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주이 태극기
데니 태극기

 

 

이응준은 1832년 태어나 역관이 되었는데, 귀국 즉시 체포되어 의금부가 수감이 됐습니다. 당시 청나라 실력자인 원세개가 '이응준이 왕을 속이고 2만 금을 가로챘다' 고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고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청룡기를 국기로 쓰라는 권유를 무시당했던 청나라가 조선의 국기를 창안한 이응준을 눈엣가시로 봤다' 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태극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1880년대부터 지속되고 있었는데, 1882년 10월 2일 도쿄 일간신문 '시사신보' 에서는 "지금까지 조선에 국기가 없었는데 이번에 청국에서 온 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를 청국의 국기를 모방하여 삼각형의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서 쓰도록 한데 대하여 고종이 크게 분개하여 결단코 거절하면서, 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도를 적색, 청색으로 그리고, 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의 괘를 붙여서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하였다." 라며 고종이 태극기의 직접적인 도안자라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마건충과 김홍집간의 필담을 담은 '청국문답'에서는 "1882년 4월11일 마건충은 김홍집과의 회담에서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조선의 국기를 흰 바탕에 태극 그림을 사용하고 주위에는 팔괘를 그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복 이후 태극의 방향과 크기, 4괘의 배치가 바뀌고, 태극의 색조가 현재처럼 수정이 되었습니다. 

현존하는 문서에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앞으로도 계속 논쟁이 되겠지만, 중국의 저러한 모습들은 국내에서도 반발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